빛은 섞을수록 밝아져

가장 밝은 빛을 내는 불꽃
‘코린트’는 그리스 건축의 대표적 양식 중 하나다. 코린트의 특징이나 역사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 않더라도 그에 영향받은 스타일은 이미 우리 일상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리스의 신전을 떠올려 보자. 거대하지만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곡선의 기둥 위에 보가 얹어진 건축물이 너른 풍경이 보이는 곳에 서 있다. 기둥의 상부와 보 사이를 받치고 있는 부분에 라는 받침돌이 있다. 기둥에 실리는 무게를 분산해 구조의 균형을 유지하는 기능적 역할도 하지만, 이 부분의 스타일은 미적 포인트가 된다.

그리스 건축은 양식에 따라 주두의 장식이 다르다. 덤불을 이룬 잎사귀 문양을 가지고 있다면 코린트 양식이다. 신전 기둥은 마치 키가 큰 자가 월계관을 쓰고 언덕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먼 곳으로 급한 연락을 보내던 봉수대의 활활 타오르는 횃불 같기도 하다. 명예가 곧 삶이던 그리스 문화를 생각하면, 승리를 위한 상징과 유사하다고 느낀 것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

덕수궁에 있는 서양식 궁전인 ‘석조전’의 양식 또한 코린트다. 석조전이 지어지던 시대를 생각해 본다. 황제가 살게 될 장소를 과거 조선의 것이 아니라 서구의 방식을 가져와 만들고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려 했다. 대한제국 말기에 짓기 시작한 이 황궁이 미처 완성되기 전에 나라는 멸망했다. 꺼져가던 국운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횃불 같은 기둥을 세우려 했던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날벼락 같은 내란 상황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장 밝은 불빛을 들고 광장으로 뛰쳐나간 지금의 우리처럼.

혼종
화려한 잎사귀 장식은 ‘아칸서스’라는 이름으로 건축뿐 아니라 그릇, 가구 등 각종 일상의 디자인에도 하나의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한때 유럽풍의 인테리어라고 생각했던 비정형 식물 문양이 가득한 카페트나 벽지 같은 것이 인기였다. 과감한 역동성을 가진 곡선과 끝이 뾰족한 잎의 형태는 복잡하면서도 다채로운 패턴을 만들기 용이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창작자에게 모티브가 되었다.

아칸서스 양식의 잎사귀는 ‘아칸투스’라는 식물에 기인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아칸투스는 지중해와 아시아에 걸쳐 해안을 중심으로 여러 종이 분포하며 그 중 그리스와 가까운 곳에서 자라는 특정 종을 묘사하며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고 또 지역을 넘어 어떤 종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칸투스는 종으로도 수십 종류에 이르지만 식물의 분류체계 단계를 올라가면 아칸투스족, 쥐꼬리망초과에 속하는 유사해 보이는 다양한 식물이 존재하고, 또 그런 분류체계와는 상관없이 저마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봐 왔고 알고 있는 유사 식물에 비유해 그리며 디자인이 변형 확장했을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아칸투스의 거칠고 두꺼운 질감과 톱니형의 잎 외형을 보고 엉컹퀴나 양귀비를 떠올린다. 자유롭게 솟아오르는 듯한 잎사귀 형태는 유연하게 주변을 타고 오르며 성장하는 덩굴식물과도 닮아 혼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생동감 있는 곡선의 잎과 잎은 연결되며 물결이 되고 파도가 되며 구름이 되기도 했다. 이는 구체적인 예술사의 계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장식의 역사를 알고 난 후 주변에서 다시 보게 되는 아름답고 예쁜 것들의 이야기다.

과거 민간에서 아칸투스와 엉컹퀴를 어떻게 사용했을까. 두 식물 모두 진통제와 해독제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유럽에서 아칸투스는 서양 문화와 예술사의 근간을 이루는 그리스와 로마 예술의 주요 특징으로 자리하며 미학적 활용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아시아 특히 중국에서의 기록은 약용으로 활용된 측면이 더 크다. 주로 뿌리와 잎을 다려 차나 탕제로 쓰며 염증과 독성을 치료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서구의 것을 복제하고 외피만 가져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다른 의미와 상징과 만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해로운 것들을 떨쳐내는 의미로,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상징으로, 모두의 안위를 기원하면서. 서구의 예술과 철학은 원주민의 삶의 방식, 아시아의 자원, 제3세계의 문화 등 토착적인 것들을 동원해 차용하고 탈식민이라는 이름으로 전유하며 또 다른 지식의 세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서구 바깥에서 서구의 문화를 흡수할 때 불균질한 미감 혹은 키치적인 풍경으로 의미를 축소하거나 문화 사대주의는 아닌지 스스로 검열에 시달린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술 역사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여기까지 다다랐다. 고대 로마 시민권의 역사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시민권을 부여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 간의 구분이 명확했다. 당연히 여성에게도 시민권은 없었고 로마 밖의 사람들이 로마로 유입되는 것을 극도로 막았다. 순수성이라는 이름으로 차별과 혐오의 근간이 되는 혈통주의 또한 로마의 중요한 정신이었다. 논밭에 있어야 하는 트랙터가 전국을 아무 일 없이 횡단해 올라와서도 서울의 경계는 넘기 힘든 풍경을 여전히 본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 견고한 경계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하고 있다. 이 세계가 오염된 존재라 낙인찍던 자신의 불온함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선언하고 있다. 그 선언을 들으며 우리는 나도 농민이 되고, 팔레스타인 시민이 되고, 또 성노동자도 되며 함께 오염되기를 자처한다. 결국 경계를 지우지 못하는 다원이나 공존보다 더 저항적이고 불온한 혼종 다시 혼종을 넘어 오염과 변이가 적극적으로 허용되는 세계가 도래해야만 하는 이유다.

이 글을 쓰면서 차를 마시고 있는 잔과 디저트 접시를 무심코 바라보고 피식 웃었다. 황학동과 후쿠오카 그리고 베를린의 중고마켓에서 내게로 흘러 들어온 것들에도 확장된 아칸서스의 흔적이 보인다. 포도덩쿨 그림, 연꽃과 엉컹퀴 잎사귀를 뒤섞은 듯한 문양 그리고 기하학적 곡선의 패턴이 새겨져 있다. 그리스 로마의 흔적은 많은 문화에 혼재되어 스며들어 있다.

차의 원천
차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아삼, 다르질링, 실론 그리고 얼그레이 정도의 말은 모두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단어가 지칭하는 것이 차의 종류인지, 산지인지, 브랜드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차의 한 종류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이 차의 이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제국주의 유럽 열강들은 아시아 여러 지역을 식민지화해 경제적 이익을 취했다. 그중에서도 차는 중요한 경제 작물로 하나였고 주요 제국들은 차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차나무가 자라기 용이한 아시아 지역을 집중적으로 정복했다. 특히 영국은 중국에서 차를 싸게 사들이기 위해 아편전쟁을 일으킬 만큼 중국의 차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중국의 차를 장악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영국은 자신의 식민지 국가 내에서 차 재배가 가능한 곳이 있는지 집착하며 산지를 발굴해 갔다.

그러던 중 현지의 식물과 자원을 조사하는 임무를 맡았던 로버트 브루스는 인도 북동부의 ‘아삼’에서 한 부족민이 야생 차나무의 잎을 씹고 있던 것을 보고 그 맛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이후 아삼 지역에서는 차를 재배하기 위한 대규모 산림 벌채이 시작되었다. 풍부한 생물 다양성과 울창한 산림으로 유명했던 이곳의 야생 숲은 식민 시기를 거치며 차를 생산하기 위한 밭이 되었다.

‘다르질링’이 세계 최고급 수준의 홍차로 불리게 된 과정도 비슷하다. 인도 히말라야산맥 2,000m 기슭 고지대의 다르질링 지역은 일교차가 큰 날씨와 높은 강수량 덕에 차나무를 재배하기 완벽한 장소였다. 영국은 차 재배에 적절한 곳을 찾다 발견한 이곳에서 유일하게 중국 품종 차의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높은 해발고도에서 자라난 찻잎은 느린 속도로 발효되며 복합적인 풍미를 만들었다.

‘실론’은 스리랑카의 옛 이름이다. 영국은 1796년 네덜란드의 통치하에 있던 실론을 점령한 후 전통적으로는 쌀과 향신료 농사를 짓던 땅에 커피 농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1867년 본격적으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식물학자인 제임스 테일러를 파견해 차 플랜테이션을 시도했고 대량생산이 시작되었다.

‘얼그레이’는 지역의 이름이 아니다. 홍차에 향을 가미한 가향차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이름이다. 영국은 차 산지 개발을 위해 이렇게 식민지국의 수많은 영토를 파헤치고도 중국차 특유의 난초향과 훈연향을 아쉬워 했다. 그래서 시도된 가향차 실험 중 홍차에 베르가못 향을 더해 만든 것이 얼그레이다. 이 차를 마시고 만족했던 영국 귀족이자 정치인이며 총리를 역임했던 백작 찰스 그레이의 이름에 따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차를 주로 향유하고 나아가 이득을 취했던 이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었고, 이 이름에는 계급(백작)까지 분명히 표시되어 있다.

그는 아시아 지역의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인 동인도 회사에서 식민지 관리의 경험을 쌓고 정치적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영국 내에서는 다양한 진보적 개혁을 추진하고, 평등과 인권 향상을 고민한 인물이었다. 노동자의 정치적 권리 확대하는 개혁법을 추진했고, 영국 내에서 노예제를 폐지하는 일에 앞장섰다. 고대 그리스의 시민권이 다시 떠오르는 대목이면서, 권력의 헤게모니는 단순하게 구성되지 않는다는 점도 생각하게 된다. 이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식민지 착취에 기반한 차 산업은 다채로운 차 문화를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스리랑카와 인도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당장 먹고사는 것만 생각한다면 두 나라의 경제 성장에 기반이 된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 발만 떨어져 보자. 우리가 마시는 최고급 품질의 차는 여전히 원산지가 인도와 스리랑카지만, 그 차를 판매하는 브랜드는 대부분 유럽의 회사다. 정작 더 이득을 취하고 있는 자들을 누구일까. 제국은 식민국의 터전에서 물리적으로 물러났지만,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더욱 첨예하게 차의 땅을 점령하고 있다.

홍차, 녹차, 우롱차, 백차, 보이차 등은 전혀 다른 맛을 내지만 모두 차나무라고 불리는 식물 카멜리아 시넨시스의 잎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물론 후가공의 방식에 따라서도 맛은 다양하게 나뉘지만, 무엇보다 어느 지역에서 자라느냐가 독보적인 차의 성격을 결정한다. 어떤 토양과 기후에서 살아왔는지, 원천과 근원이 무엇보다 중요한 식물이고 식재료다. 유럽의 열강들이 차나무가 자랄 수 있는 ‘땅’을 수색하듯 찾아다닌 이유다. 이 이야기는 비단 차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주어를 커피나 팜유 등 거대한 플랜테이션을 야기한 주인공들과 바꾸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완벽하게 커피 인간으로 혼종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은 산미와 바디감을 너머 원천의 땅을 쥐고 흔드는 자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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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두(柱頭)는 기둥 머리란 의미로 건축물 기둥의 상부에 설치되어 기둥에 가해지는 하중을 분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