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의 머리에도 눈이 있다면, 조각난 시간을 봉합할 수 있을까

개인전 《실의 머리에도 눈이 있다면》(2023)의 서문으로 쓰여진 글이다.

기역자 모양의 공간을 따라서 빛을 잔뜩 머금은 격자무늬 창틀이 반대편 액자 유리에 반사된다. 색을 켜켜이 얹은 리소 이미지 위에 자리 잡은 빛과 그림자는 우리의 시선을 빼앗고 기어코 정확하게 보기를 방해한다. 필연적으로 ‘읽기’에 실패하는 대신, 우리는 우연과 운명에 기댄 돌발적인 이미지를 바라보게 된다. 김보경은 ‘25시 세일링’ 활동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빛을 작업에 중요한 요소로 데려온다. 빛의 기호로, 빛의 개입을 의도한 설치 작업으로, 빛의 방해를 애써 가로막지 않는 방식으로.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머나먼 시간을 경유해 도착한 빛은 ‘시차’와 ‘시대착오’를 통해 세상과 관계 맺는 작가의 작업과 닮아있다.

지난 몇 년간 김보경은 현대 도시풍경에 이식된 식민건축의 흔적을 쫓았다. 식민건축은 작가가 세상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일종의 매개체이다. 역사의 잔재, 흔적, 기록 속에서 경험해 보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끊임없는 물음을 던지며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실로 엮어낸다. 김보경의 작업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직조된 실뜨기를 볼 때마다 나는 오래된 시간과 지연된 속도를 생각한다. 다음 검색어로, 알고리즘으로, 이어지는 링크를 따라 이동하고 발견하는 정보들을 새롭게 연결하는 작업의 시간은 양손의 호흡(2023)으로 비로소 눈앞에 있는 공간 안에 소환된다. 손에 잡을 수 없는 시간을 붙잡고 연결시키고 싶은 열망이 양손에 붙잡은 실의 왕복운동으로 수행된다. 그런 면에서 이미지 데이터를 만들고, 그 이미지를 인쇄한 종이를 잘라, 다시 조각난 종이를 이어 붙이고 엮은 걸어가는 빛의 견본 ─ 다각도의 일렁임(2023) 역시 비워진 시간을 어떻게 연결하고 봉합할 수 있을지 탐구하는 과정일 것이다. 마치 자본 위에 구축된 도시개발과 공고하게 서 있는 건축물에 대항이라도 하듯, 가볍고 느리고 변화무쌍한 형태로 어긋난 구멍을 채우는 작가의 ‘수행적’ 태도는 가능성을 품은채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작가는 《실의 머리에도 눈이 있다면》(2023)을 전시를 “《하이픈》(2022)의 연장선 혹은 그사이의 공백”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2022년부터 시작한 실의 머리 연작을 새로운 층과 색으로 조합해 찍어내어 형식적 실험을 시도하거나, 물결 무늬의 다른 면처럼 지난 작업의 일부를 레퍼런스 삼아 새로운 이미지를 직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실의 머리(2023)는 작가 스스로의 아카이브를 다시 돌아보는 과거와 현재의 상호작용이다. 여기에는 이질적인 시공간이 중첩되는 방식으로 등장하거나, 아무 맥락 없이 출몰하는 이미지 조각이 있다. 작가가 “픽셀이 되기 때문에 원본을 읽어낼 필요 없다”고 표현했던 것처럼 원래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단편모음 은 또 다른 기호와 이름으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 실제로 실의 머리(2023) 신작에는 장소와 맥락을 소거해 버린 순간의 풍경만이 우리와 새로운 관계 맺는다. 또한 종이의 접합으로 무한히 연결될 가능성을 품은 걸어가는 빛의 견본 ─ 접점 타래(2023)는 실의 끝과 끝을 연결하는 일처럼 다음 접점과 타래로 이어지는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 은하를 연결하는 실가닥처럼 머나먼 거리를 지나 우리와 접속한 빛의 굴절은 전혀 다른 의미로 불리다 느닷없이 불시착한 이 곳에서 새로운 기호로 이름이 붙여진다. 실패를 각오한 가정에 실패를 품은 질문으로 응답해본다. 실의 머리에도 눈이 있다면, 끝끝내 조각난 시간을 봉합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전시 《실의 머리에도 눈이 있다면》(2023)은 굴절된 과거를 정확하게 읽어내기 위한 열망이자,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시간에 틈입해 새로운 기호를 끊임없이 생산할 것이라는 작가의 태도와 다짐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