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하지 않을 빛으로 엮는 매듭

밤 낮 도시를 걷다 보면 내부가 투명하게 보이는 여러 모양새의 건물을 만나게 된다. 여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불이 켜져 있는 사무실, 왁자지껄 거실에서 함께 무언가를 보며 웃는 사람들, 암흑 속 고요한 시간이 흐르는 밤의 창. 반면, 햇살이 쨍하게 내리쬐는 여름날 성난 빛에 눈을 찡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면 도무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창을 마주한다. 시선은 그로부터 튕겨져 나와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건너에 놓인 사물을 되풀이하는 장면을 본다. 그러나 이 반영체는 건너편의 대상을 완벽하게 흡수하지 못하고, 분절되고 굴절되어 거리를 둘러싼 거대한 창에 길을 내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을 만들어 낸다. 때때로 바람이 일렁이면 잠시 넘실대는 파도의 움직임이 한순간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굳이 한낮의 도시 공간에서 겪는 구체적인 일반의 경험을 한 문단이나 빌려 덧붙인 것은 여름의 시작과 함께 본격적인 더위를 알리는 소서(小暑)를 사이에 두고, 사방이 벽으로 막힌 인천아트플랫폼 2층 전시장에 김보경이 내고야 만 창 앞에서 잠시 주춤할 당신을 위해서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창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몸을 한껏 움직여 그 앞으로 성큼 걸어간다면,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묘한 거리감을 느끼며 다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게 될 테니 말이다. 리소 인쇄(Risograph)로 제작한 〈실의 머리〉 연작은 당신에게 어떤 장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보여주지 않는다. 줄표(―)로 연결된 부제에 기대어 추측하는 익숙한 도시 공간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중으로 나 있는 창의 내부를 감춘다. 대신 창 바깥의 시간에서 불현듯 흘러 들어온 반사광이 건축의 표면에 자리 잡는다. 불완전한 모습의 반사광은 안과 밖을 경계 짓는 면을 완전히 덮치지 못하고 이내 겹쳐지는 층을 만든다. 용지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이미지를 표현하고, 그 구멍으로 잉크를 통과시켜 여러 겹의 레이어를 만드는 리소 방식과 그가 매체를 통해 구현하는 반사광의 모습이 중첩하는 순간이다.

긴 시간 머무른 베를린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작업을 이어가기 시작한 김보경은 작년 어느 출판사의 편집실에서 개인전 《하이픈 Hyphen》(2022)을 열었다. 전시장의 안쪽 방 벽면에는 그가 베를린의 거리를 거닐며 렌즈에 기록해온 반사광 사진과 그가 만들어낸 가상의 반사광 이미지를 엮은 〈실의 머리 ― 걷기, 베를린〉(2022)이 자리 잡았다. 〈실의 머리〉가 과거를 감각하기 위한 응시를 담아낸다면, 과거-현재-미래 세 개의 축을 연결하기 위해 김보경이 사용하는 것은 그의 ‘양손’이었다. 첫 머리에서 출발해 반대의 방향으로, 즉 하나의 선으로 나아가는 글쓰기에 맞서 선을 끊어내고 오리고 다시 접합하며 행해지는 ‘편집의 일’에 따라, 편집실을 잠시 점유한 그의 움직임은 이미 지나간 선형적 시간의 무더기 안을 헤집고 들어가 실을 모으고 비우고 매달고 늘이고 ― 감았다 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실의 머리는 양손이 만드는 ‘5mm 왕복 운동’ 아래 시간의 앞과 뒤를 엮고 때로는 앞과 앞을 뒤와 뒤를 연결했다.

실이 얽힌 바늘을 쥐고 왼손과 오른손이 잠시 만났다가 어긋나며 만드는 리듬은 김보경이 지나간 과거를 인식하는 구체적인 행위로 나아간다. 먼지 쌓인 기록의 더미를 향해 걸어 들어가 발견한 파편들을 ‘짜깁기’하여 만들어진 아카이브에서 나타나는 반복과 단절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실의 엮음새로, 나아가 한 공간을 가득 점유하는 월페이퍼로 확장한다. 동아시아에서 서아시아까지 상괭이 서식지 경로를 따라가다 발견한 식민건축물의 궤적을 한 장의 뒤섞인 이미지로 엮어내어 책의 형태로 꿰맨, 전시 《웃는돌,고래》(2021, 임시공간)에서 보인 〈메쉬 스티치 크로쉐 연습: 낮은 물, 빛나는 것, 거울반사 #01-03, #04-06, #07-09〉(2021). 바다의 길을 통해 서울까지 흘러 들어온 식민된 몸체와 그 원형을 별 기호와 아칸서스 문양으로 묶은, 전시 《교착 상태: 아카이브적 여정》(2022, YPC SPACE)의 〈스크롤링 반사광 ― 별이 총총한〉(2022). 그는 근대 시기 해상무역의 길을 제공했던 물결에 몸을 실어 흐릿한 경계를 넘나들고, 건축물이라는 기호로서의 문화가 낯선 땅 위에 뿌리박고 세워지게 된 시간을 추적한다. 언제나 부족한―설령 그것이 넘쳐나더라도 역설적으로 빈곤하게 느껴지는―자료 안을 유영해야만 하는 리서치 과정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고개 숙여 들여다보고 빈 채로 남겨진 틈을 상상으로 채워보다 끝끝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직접 그 곳으로 걸어간다. 과거와 현재 시제를 몸으로 통과하여 이해해보려고 하거나 혹은 이를 포기한 채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는 직/간접적인 그의 시도들은 도착지를 정하지 않고 어디론가 되돌아가는 실의 형태와 맞닿아있다. 인천도시역사관 1층 빛이 통과하는 창의 전면을 반투명하게 뒤덮은 〈보이는 짜깁기 ― 연흔 장면〉(2022)은 개항 이후 인천에 들어온 무역회사 세창양행 바늘에 대한 리서치로 시작하여, 수직으로 솟아 올라가는 도시의 세속적 욕망과 교차하는 수평의 매듭을 잠시 정박시켰다. 나아가 미술관 주변 공간에 대한 기억을 주제로 열린 전시 《기억‧공간》(2023, 아르코미술관)에서 김보경이 관객을 초대하는 꿈/기억의 장면 〈표풍(漂風)하는 걸음〉(2023) 은 이러한 리서치의 운동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술관 전체를 에워싼 붉은 벽돌에 관한 리서치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뻗어나가는 이야기가 자리하는 곳은 마로니에 공원에 우뚝 선 나무, 흥덕동천을 복개한 흔적, 낙산공원과 마로니에 사이를 관통하는 바람의 움직임이다. 일렬로 나아가는 시간성에 저항하고 이에 구부러진 곡선을 그리며 되풀이되는 아카이브의 시점을 감각하는 방법. 그렇게 김보경은 두 손을 움직임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빈곤한 조건을, 남겨진 기억을 살펴야하는 인간 생의 조건으로 확장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돌아보며 완벽하게 메울 수 없는 간극을 엮어낸다.

Coda. 언젠가 밤 10시가 넘은 시각 그로부터 걸려온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작년 전시를 마친 뒤 오랜만에 꺼낸 반사광의 크기가 늘어난 당황스러움에 걸려온 전화였다. 완성을 공표하고 작품 캡션에 남긴 숫자보다 확연하게 달라진 반사광을 줄자로 힘겹게 재어보며 잠시 고민에 휩싸였을 그가 걱정되면서도 한편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이내 서로 웃으며 ‘살아 움직이는 작품이네요’ 하고는 앞으로 캡션에 ‘가변 크기’라 적어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변형이 꽤나 유연한 실이라는 매체적 특성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지만 결코 완성이라는 도착점에 다다를 수 없다는 점에서 그가 행하는 리서치라는 지난한 과정, 그 안에서 지나간 시간을 붙잡으려 부지런히 뒤쫓지만 결국 닿지 못해 체념해버리고 마는 장면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이 글의 머리에서 인용한 책의 동일한 장에 적힌 문장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체념에서 비롯된 장면은 닫힌 완결이 없기에 그 안에 더 많은 타자를 받아들인다. 결코 완성할 수 없음에도 당신에게 “이보다 더 완전할 수 없는” 순간을 내어줄 때, 우리의 손이 망쳐온 세계를 다시 양손으로 자르고 모으고 엮어내어 그가 쌓아올린 세계는 당신을 환대한다. 점점 더 큰 손짓으로. 그리고 마침내, “체념을 넘어 사랑에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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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렘 플루서, 『몸짓들』, 안규철 역, 3판, 서울: 워크룸 프레스, 2020, p.70